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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트] 노화 치료약?

20여년 전,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머리카락으로 건강 및 노화 상태를 측정하는 유전자 검사를 하였는데, 검사 결과 필자의 ‘신체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10년 이상 많게 나왔다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도 한창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 개월 뒤 회의 도중 쓰러져 결국 입원 수술을 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이미 노화 진행이 빨라 질환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해 준, 머리카락 유전자 검사 결과를 귀담아듣지 않았던 걸 후회했었다.   ‘노화’는 어린 나이부터 이미 시작되는 현상으로, ‘생물학적 노화’의 측정 개념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고, 노화를 정량화하는 진단법들이 1990년대 말부터 대중에게 서서히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노쇠지수’에 이어, 머리카락, 혈액 및 침 속의 유전자 검사 및 2009년도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텔로미어: DNA 말단의 비암호화된 염기서열’의 길이를 측정하는 검사 등이 있다.     올여름 미국 연예인 ‘카다시안’ 리얼리티 쇼에서, 노화 상태를 측정하는 에피소드가 방영되면서 타액 자가검사 키트가 소개되었는데, 머리카락 및 타액 자가 검사 키트는 이미 상용화되어 맞춤 화장품 및 맞춤 건강식 전략 기반정보로 사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다른 조직이나 장기보다 노화가 빠른 장기를 찾아내어 해당 질환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추려는 의약학적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UCLA 대학 연구 결과, 여성의 경우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가슴 조직이 빨리 노화되고, 특히 ‘유방암’ 조직은 다른 조직에 비해 무려 12살이나 더 노화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한 기사가 있다. 2013년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에서 유방암 발병 확률이 85% 넘게 나오자 ‘건강수명’을 늘리고자 예방 차원에서 유방 절제술을 시행했음을 고백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도 기억할 것이다.   또한 과학저널 Nature에 실린 미국 스탠퍼드 의대팀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심장 노화가 빠른 사람은 정상 속도로 노화하는 심장을 가진 사람보다 심부전 위험이 250% 높았고, 뇌 노화가 빠른 사람은 대조군보다 향후 5년간 인지 기능 저하를 보일 가능성이 18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마치 길이가 짧을수록 노화의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텔로미어’처럼, 자기에게 배달된 상자를 열었을 때 짧은 끈을 받은 사람은 긴 끈을 받은 사람에 비해 빨리 노화하고 죽는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상자 앞에서 저마다 체념과 저항과 순응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 바로 상자를 열어 끈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열지 않는 운명론자도 있었다. 나라면 상자를 열 것인가?   노화와 유전학의 대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 싱클레어 박사는 ‘노화는 질병’이라고 선언하였다. 고혈압 환자에게 고혈압약을 처방하듯이 ‘노화라는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여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다분히 선언적인 의미이다.   ‘노화 시계’와 연관 있는 물질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최근에도 코펜하겐 대학 연구원들이 OSER1이라는 특정 단백질이 장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제, 자신의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른 맞춤형 ‘저속노화’ 생활 습관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노화 치료제’ 개발로 ‘건강 수명’을 늘리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류은주 / 동아 ST 미국 대표·동국대학교 교수오늘의 노트 치료약 노화 심장 노화 노화 진행 노화 상태

2024-10-14

[오늘의 노트] 글로벌 헬스케어 이노베이션과 미국 진출

지난해, 주최국인 미국을 제외한 세계 85개 참가국 중 한국이 최다 참여 인원을 기록했던 글로벌 제약 바이오 파트너링 컨벤션인 BIO US 연례 미팅이 6월 초 샌디에이고에서 열린다. 올해 한국 참가 기업 수도, 500여 기업이었던 작년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 5~6년 사이에 30여 개가 넘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미국에 직접 지사를 열었다.   이에 한국 제약업계에서 15년, 뉴욕 화이자 본사에서 15년을 근무하고, 3년여 한국제약사 미국 대표를 맡은 필자의 경험과 의견을 글이나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많아지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은 ‘혁신성’과 ‘생산성’이라는 키워드 아래 글로벌 R&D 협업과 오픈이노베이션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최소 15년이라는 시간과 1조원이 넘는 연구비를 쏟아붓고도 10%에 못 미치는 신약 개발 성공률을 고려할 때, 가장 효과적인, 어쩌면 필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 제약 R&D 과정은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각 수행하는 많은 실험 프로젝트들이 상호 연결되어 최종 결과물을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글로벌 협업을 통해서 적시 적소에 필요한 전문가를 투입하고, 까다로운 의약품 규제, 각 지역의 문화적, 정치적인 차이 등을 다 아우를 수 있어야 궁극적인 목표인, 성공적인 글로벌 상업화 -직접 판매이건, 기술수출이건, 성공적인 IPO 이건-를 이룰 수 있다.   제네릭과 개량신약 위주의 사업모델로 한국 국내 시장에 만족할 수도 있었으나, 글로벌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한국 기업들에 우선 큰 박수를 보낸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여전히 다소 위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한국 비즈니스 문화를 고려할 때, 전격적으로 미국에 지사를 오픈하는 것은 ‘혁신’으로의 첫걸음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글로벌 진출 시 일반적으로 겪는 세 가지 난관을 꼽으라면 기본적인 글로벌 R&D 경험 부족과, 글로벌 경험을 갖춘 인재 부족 및 비즈니스 조직과 문화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질적인 글로벌 R&D 경험을 구축하고 내재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본사 리더십의 의지와 별개로, 글로벌 인재 채용과 유지 면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국과 미국이 확연히 다른 노동 시장과 노동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지사 내 인사 전문가의 고용이나 도움 없이 한국 인사 규정 그대로 혹은 대략 그에 준하여 글로벌 인재 채용과 관리, 성과 평가 및 보상 등을 추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제약 기업은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볼 때 ‘모르는 기업’인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제약회사 이름으로 미국 FDA 허가를 통과하여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내에서는 큰 기업일지라도 세계시장에서 우리 대부분은 아직은 중소규모 바이오 회사 정도로 간주한다. 그래서, 미국 지사의 인지도 향상이나 현지 네트워킹 강화 활동이 필수적이며 국제 협력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미국 지사에 명확한 역할과 책임, 일정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필요한데 아직 대부분의 지사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좋은 원천 기술로, 글로벌 인재들과 수많은 국제 협력 기회가 있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보다 빠르게 꿈의 매출 1조,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는 한국 기업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류은주 / 동아 ST 미국 대표오늘의 노트 미국 이노베이션 글로벌 헬스케어 글로벌 시장 글로벌 제약

2024-05-29

[오늘의 노트] ‘잠’

최근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면유도제인 멜라토닌(Melatonin) 젤리를 나눠 준 기막힌 일이 있었다. 학부모들의 신고로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고 해당 교사는 사임하였다.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멜라토닌은 생체 호르몬의 일종으로 처방전 없이 구매가 가능하며 멜라토닌 함유 사탕이나 젤리 형태인 수면유도제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2022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고를 인용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들의 멜라토닌 중독이 10년간 530%나 증가했으며 두 명의 어린이는 멜라토닌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응급센터에 실려 오는 멜라토닌 중독 어린이들의 사례가 급격히 늘자, 2022년 미국수면학회(AASM)는 13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멜라토닌이 든 수면 보조제의 사용 금지를 강력히 권고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져 가고 있는데,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 본인이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멜라토닌 젤리를 학생들에게 먹인 교사의 행동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멜라토닌과 함께 많이 사용되는 또 다른 수면제로 처방의약품인 졸피뎀(zolpidem)이 있다. 화이자 글로벌 마케터였던 필자처럼 해외출장이 잦았던 동료 중 빠른 시차 적응을 위해 늘 출장 가방에 가지고 다닌 동료들도 있을 만큼 효과적이고 안전하다고 알려진 졸피뎀이지만, 이 약 역시 오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     2021년 타이거 우즈의 졸피뎀 과다복용으로 인한 끔찍한 차 사고를 비롯해 많은 상해 사례가 있고, 2010년 유엔이 지정한 ‘강간 약물(Date-rape drugs)’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로 수면제 중 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되어 주의를 필요로 하는 약물이기도 하다.   수면제의 역사는 19세기에 수술 전 환자에게 투여하였던 마취제가 그 뿌리라고 하며, 최초의 수면제인 세코날(Seconal)은 중독에 의한 부작용으로 자살 시도가 늘면서 2022년 초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렇듯 수면제는 오남용 위험과 장기 복용 시 중독성의 위험이 크지만, 늘 5시간도 채 자지 못하거나, 짧게 짧게 자다 깨다 뒤척임을 반복하는 만성 불면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우울증, 치매 등의 다양한 합병증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필요악 같은 약물이다.     이에 제약계에서는 중독성이 없는 수면제의 개발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수면 건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반영하듯, 숙면을 돕는 각종 슬립 테크와 보조 식품 등 수면 산업이 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수십조원 시장을 형성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 삶의 1/3을 차지하는 잠자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인체의 변화와 비밀을 밝히려는 과학계의 노력도 진보하여, 수면 뇌파인 알파파, 렘수면과 잠의 5단계 등 미지의 잠의 세계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과학 발전의 원천이 ‘상상력’이듯, 불면증의 고통 속에 집필을 시작했다는, 가상의 잠의 6단계를 주제로 한 베르베르의 소설 ‘잠’과 자각몽(Lucid dream) 속의 꿈 도둑을 설정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셉션(Inception)’은 ‘잠’에 관해 진심인 우리의 흥미를 한층 돋우고 있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최소 수면시간, 최저 수면의 질을 기록한 안타까운 대한민국. 잠을 줄여가며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우리 이민세대들.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달콤한 꿈을 꾸면서도 꿀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이 보약인 것을. 류은주 / 동아 ST USA오늘의 노트 멜라토닌 중독 멜라토닌 젤리 멜라토닌 함유

2023-10-30

[오늘의 노트] No Exit, Say No!

지난달 15일 뉴욕 브롱스의 유아원에서 강력한 마약 펜타닐에 노출되어 유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미전역이 분노하였다. 그 유아원 아가방 매트 아래 숨겨져 있던 마약이 무려 50만명분의 치사량이었다고 한다. 마약사범을 검거한 경찰이 차 트렁크를 열자마자 실려있던 펜타닐 냄새로 인해 바로 마비증세를 일으키며 고꾸라지는 충격적인 영상도 방영된 적이 있듯이 펜타닐은 개미만큼 작은 양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강력한 마약이다.   미국에서 매년 10만명 이상의 약물 과다 복용 사망자 중 70%를 차지하는 주범이 된 ‘죽음의 마약’펜타닐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가 글로벌 공조를 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다.     2016년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바로 올 4월 강남구 학원가 일대에서 청소년들에게 마약이 든 음료를 ‘성적향상 드링크’로 속여 조직적으로 나눠주고 협박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범죄에 당하는 경악할 사건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호기심으로 시작하던, 나도 모르게 당하던, 마약은 한 번만 사용해도 그 중독성이 강해서, 점점 의존성이 높아지면서 뇌 손상을 일으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의료용 마약 처방의 오남용 문제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말기 암 환자의 통증 억제 치료제로 개발된 펜타닐의 처방 건수가 한국의 경우 지난 5년간 60% 이상 증가했고, 과다복용으로 마이클 잭슨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의료용 페놀류 정맥 마취제 중 하나인 프로포폴의 한국 내 남용 적발 사례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 한국이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했다고 한다.   마약 오남용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작년 국내 조제 및 약 판매량의 2/3를 점유하는 월그린, CVS, 월마트, 크루거 등 대형 약국 체인들에 조 단위의 배상금을 내라고 판결했다. 약사이면서 제약인인 필자도 왜? 라는 의문이 들었고, 해당 약국 체인들도 처음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적법하게 조제만 한 약국들이 무슨 잘못이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약 오남용 위기를 인지하고 예방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결국 작년 말 월그린을 시작으로 지난달 크루거까지 차례로 벌금을 냈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올해부터 마약 떡볶이, 마약 김밥 등의 상호에 마약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적극 권고 조치 하는 것도 마약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를 차단하려는 사회적 책임 의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강력한 마약 오남용 규제 및 처벌과 책임감 있는 사회 공동의 노력 외에 중독자들에 대한 신속한 치료와 재활 서포트도, 삶의 터전을 ‘좀비도시’로 전락시키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중요하다. 지난 4일 미국 FDA는 마약류를 포함한 다양한 흥분제 사용 장애를 치료하는 해독제 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중독 치료제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나도 모르게 마약에 노출될 위험을 소비자가 직접 체크할 수 있는 마약 판독 진단키트 개발에도 큰 진전이 있다고 하니 곧 상용화되길 기대해본다. 더불어 마약성 진통제를 대체할, 강력하면서도 중독성이 없는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 노력이 제약계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류은주 / 동아 ST USA오늘의 노트 exit say 마약 오남용 마약 펜타닐 의료용 마약

2023-10-11

[오늘의 노트] 무료 의료 통역 서비스

2월 21일은 모국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992년 유엔이 제정한 ‘모국어의 날(Mother Language Day)’ 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에 7000여 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병용하는 대다수의 코리안 아메리칸처럼, 모국어와 제2 언어 동시 사용자를 종합했을 때 한국어는 7000개 중 상위 15~20위 언어이며, 다양한 지역과 인종으로 그 사용이 점점 글로벌화되고 있다고 한다.     언어는 개인의 정체성과 민족 문화유산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미국 내 한인들도 한국어 외에 영어를 배워 그 안에 내재한 미국 문화를 더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언어의 차이, 문화의 차이를 좁힐수록 이민 사회에서의 여러 가지 불편과 불평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몇몇 특수 영역에서는 영어가 어려워 그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료 및 법정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우 한국어 통역 서비스를 요청하면 된다. 무료다.   의료 통역의 경우, 미국에서는 모든 환자에게 동등한 의료 서비스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환자가 요청하는 모국어 서비스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및 각종 연방 기금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는 의료 시설의 경우 영어 미숙 환자에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1964년 ‘민권법 Title VI’가 공표되었다. 더불어, 인종이나 피부색 또는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Affordable Care Act 섹션 1557’로 의료 통역 서비스 규정이 한층 강화되었다. 가족들은 나쁜 뉴스일 경우 축소하거나 왜곡하여 전달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이중언어가 가능하더라도 가족 간 통역을 제한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AMN 헬스케어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어 통역 요청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통역사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한다. 100세 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한인 1세들의 의료 시설 이용이 늘고 있는데 언어 장벽으로 인해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이런 기사들을 접하고, 글로벌 보건 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는 지난해 직접 한국어 의료 통역사 자격증에 도전해 보았다. 의료 용어, 의료 윤리, 환자 권리에 대한 기본 지식과 한국어와 영어 통역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대표적인 통역사 인증기관인 NBCMI에 따르면 2023년 1월 현재 50여개 통역 가능 언어가 등록되어 있고 이 중, 한국어 의료 통역사는 총 80여명으로 다른 인증 기관들을 포함하면 미국 내 약 150여 명의 한인 의료통역사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어를 잘해도 전문분야인 의료 용어를 배울 기회는 드물었을 것이므로, 중요한 진단, 치료, 수술하는 경우에는 통역사를 정식 요청하여 소통의 오해와 실수를 줄이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 아무래도 한국어 의료 통역사가 함께 있으면 의사 앞에서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정확한 의료 문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모국어의 날’을 제정한 유엔과 기본적인 의료 접근을 보장하는 미국의 ‘모국어 의료 통역 서비스 법령’은 모국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에 따른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의 결과인 것 같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고 주저하지 말고 의료 통역으로 좀 더 편하게 의료 혜택을 받으시면 좋겠다. 환자의 권리다. 류은주 / 동아ST USA오늘의 노트 서비스 무료 의료 서비스 의료 통역 통역 서비스

2023-02-03

[오늘의 노트] ‘놀라운 하수의 비밀’

화이자 마케터로서 필자가 담당했던 의약품 중 하나인 비아그라 특허가 2012년에 끝나고 다른 발기부전 치료제들의 특허도 줄줄이 풀리면서 수많은 제네릭이 시장에 유통되었다. 이에 2018년, 생활 하수를 통해 마약과 의약품 등을 분석, 연구하던 한 대학교수 팀이, 일주일간 중랑천과 탄천의 하수 처리장의 하수를 분석해 보았더니, 발기 부전 치료제 성분 검출량이 주중보다 주말에, 특히 금요일 밤에 채취한 하수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는 재미있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렇듯 사생활 침해 없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로, 지역 내 생활 하수에서 생물학적, 화학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을 ‘하수 기반 역학(Wastewater-Based Epidemiology)’이라고 한다. ‘하수 역학’은 2000년경 미국에서 불법 마약 자료 수집 목적으로 처음 소개되었다고 하는데,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많은 국가에서 코로나 추적 기법으로 널리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이탈리아에서 2020년 1월 말 첫 코로나 감염자가 진단되었지만 하수처리장에서 유전체 분석을 한 결과 코로나바이러스가 12월 15일에 이미 발생했음을 알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40여개 주 170개 이상의 하수 시설에서 코로나 추적 연구를 시작했으며 몇몇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기숙사 하수를 분석하여 코로나 전파 예방에 이용해 왔다고 한다. 하수처리장에서의 코로나 유전적 흔적이 코로나 확진 전에 이미 검출되었고, 코로나 확진자 수와 함께 증가한다는 보고가 여러 나라에서 발표되기도 하였다.   비록 ‘하수 역학’은 해당 환자에게서 직접 얻는 데이터가 아니라는 점 등의 한계성으로 인해 부가적인 데이터 검증 정도의 의미가 있는 분석법이지만, 진단받기 전의 무증상 감염환자도 배변, 배뇨 즉 ‘볼일은 본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감염 발생 이전부터 감염병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지역 전파 추적 조사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최근 주요 감염병 관련 뉴스에서도 하수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지난 8월 26일자 뉴욕중앙일보는 월스트리트저널과 WHO 보도 등을 인용하여 원숭이 두창 감염 증가세가 세계적으로 둔화하는 신호를 보인다면서, 한 예로, 샌프란시스코 지역 하수에서의 원숭이 두창 DNA 검출량이 안정화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또 올 6월부터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영국, 미국, 캐나다 하수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검출되었고, 영국에서는 감염자가 나오기 전이었음에도 하수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자 바로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수 역학’의 연구 활용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2년에 한 대학교수 팀이 하수에서 검출한 마약류 분석 결과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유엔이 정한 마약청정국(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 미만)에 속해 있던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준 결과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6년경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2019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버닝썬 사건이 터지면서 지역 사회 내 마약류 사용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자 2020년부터 식약처에서 매년 하수 역학을 이용한 생활 속 마약류 연간 보고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코로나 하수 역학도 전격 활용 중이라고 한다.     엄청난 양의 하수에서 극소량의 약물과 바이러스의 흔적을 찾아내는 기술이 놀랍다. 류은주 / 삼양 바이오팜 USA 대표이사오늘의 노트 하수 비밀 코로나 확진자 결과 코로나바이러스 하수 역학

2022-09-06

[오늘의 노트] AI 대 코로나

2년 반을 넘기는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슬슬 지쳐가지만, 그래도 결코 질 수 없다는 각오와 간절함 때문일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제 우리의 일상과 세상은 ‘어느 기도문에 나오는 해묵은 진실처럼 특별’해 보인다.   왕관 모양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정말 군주 행세를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변이를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 2020년 하반기에 첫 유전적 변이가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알파, 베타, 감마, 델타와 같은 그리스 알파벳을 순서대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이름에 붙이고 있다. 현재는 15번째 알파벳인 오미크론 변종들이 전 세계 감염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영어의 ‘New’라는 발음으로 혼동되거나 ‘Xi’로 특정 인물과 혼동 가능성이 큰 두 개의 그리스 알파벳은 건너뛰고 ‘오미크론’까지 왔지만 언제 또 그다음 알파벳인 ‘파이’가 불릴 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변이마다 유사 변이, 후손 변이, 재조합 변이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이제 WHO 작명법과 영국에서 개발한 Pango 작명법 (예를 들어, 오미크론 변이 BA.5, 오미크론 재조합 변이 XE 등)을 함께 사용해야 쏟아져 나오는 변이들을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관리할 수 있다. 개발에 수년이 걸리던 백신을 수개월로 단축했고 새로운 변이의 전파력, 면역 회피력 등의 분석 정확도와 시간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어떤 새로운 변이가 나올지 예측하여 대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11일, 미국 캠브릿지에 세워진 바이오 스타트업 ‘Apriori Bio’에서, 자체 개발한 ‘Octavia’라는 AI 시스템이 코로나바이러스 변이를 예측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2020년부터 그간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를 예측해왔고 이제 축적된 노하우로 BA.5 오미크론 이후의 변이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은 긍정적인 소식이다. 정말 이 AI 기술이 항원인 바이러스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읽어내서, 그에 대항할 백신을 수개월 전에 미리 생산해낼 수 있게 도와줄 수만 있다면….   1957년 다트머스 학회에서 처음으로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산업 및 연구 현장과 가정에서 로봇이나 각종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AI 발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중적으로는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을 제패한 IBM의 AI 컴퓨터 딥블루와 2016년 세계 바둑 챔피언 이세돌을 무릎 꿇린 구글의 AI 컴퓨터 알파고가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생활 전반에 자리 잡은 AI 기술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약물 재창출 후보 물질 스크리닝’을 통해 백여 개가 넘는 치료 후보 물질들을 빠르게 일차 선별해내기도 하였다.   물론, 모든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WHO 기준에 따른 ‘위험’이나 ‘요주의’ 바이러스로 분류된 건 아니며, 기존 백신 접종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형인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Octavia와 같이 진보된 AI 기술이 새로운 변이와 그에 따른 우리 몸의 면역 반응 변화를 잘 예측했다는 반가운 후속 뉴스를 기대해본다. 우리의 일상과 세상이 ‘특별’하지 않고 다시 ‘평범’하게 느껴질 날을 간절히 고대해본다. 류은주 / 삼양 바이오팜 USA 대표이사오늘의 노트 코로나 코로나바이러스 변이 그간 코로나바이러스 변이 재조합

2022-08-09

[오늘의 노트] 전쟁과 약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점령했던 러시아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 나흘 후인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본토를 전격으로 침공했다. 많은 전쟁 명분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부동항인 세바스토플을 포함한 크림 반도의 점령 전부터 러시아는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노려왔다고 한다. 지구 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졌지만 추위에 얼지 않는 부동항이 없었기 때문에 해상 패권 장악을 위한 부동항 점령에 역사적으로 집착해 온 러시아.   또 다른 예로, 러시아는 1800년대 말 요동반도의 부동항 뤼순 항을 획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뒤 러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뤼순 항 확보에 실패했다. 이때 일본군의 승리 뒤에는 러시아를 정벌한다는 뜻의 ‘정로환’이라는 약이 있었다. 전쟁 지역의 오염된 나쁜 물로 인해 일본 병사들이 대규모 배탈.설사를 일으키며 나가떨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일본 내에서 긴급 실시된 약품 공모전에서 ‘정로환’이 개발된 것이다. 이 약을 먹고 병사력을 재정비한 일본이 러시아에 이겼다는 얘기다. 정로환은 수십 년 후 한국에서 ‘정벌할 정’이 아닌 ‘바를 정’자 ‘정로환’으로 생산되어 국민의 배탈.설사 방지를 위한 가정상비약이 되기도 했다. 어릴 적, 작고 동글동글한 까만색 정로환이, 마치 필자의 외가댁에서 기르던 염소의 똥과 닮았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로 염소똥 약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쟁 구호 약물로 널리 알려진 또 다른 약은 아마도 페니실린일 것이다. 화이자는 알렉산더 플레밍이 실험실에서 발견한 페니실린을 1940년대 초 상업적으로 약품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당시 2차 대전 구호 약물로 대량의 페니실린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많은 병사를 감염 사망으로부터 살려낼 수 있었다. 세균성 감염의 최초 치료제인 페니실린 이후로 아주 다양한 항 감염성 약물들이 개발되었다. 필자도 십여년 전 화이자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로서 이머징 마켓 항균제 전략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터에 생명을 구하는 약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군인들의 졸음과 피로를 무모하리만큼 마비시키는 강력한 각성제의 투여는 약이 독으로써 활용된 경우이다. 일명 히로뽕, 메트 암페타민과 암페타민 등이  2차 대전 중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군사력 증가 명목으로 군인들에게 배급하였고 군인들은 야간 행군을 무릅쓰고 며칠 밤낮을 진군하였다고 한다. 피로 해소를 넘어 마약성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각성제의 상습 복용으로 2차 대전 후 수십만명의 참전 용사들에게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났다. 영토 확장을 위해 강요된 약물 복용의 안타까운 피해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세계 각국이 일제히 비난하며 강력한 경제 제재를 시작한 가운데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는 러시아 정부 펀드로 생산되기 때문에 WHO,  미국, 유럽 등에서의 승인과 사용이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한다. 그런 한편, 유럽제약협회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환자들을 위한 필요 의약품에 대해 제재는 하지 않도록 특별 성명서를 통해 요청했다고 한다.   두려운 전쟁과 비위생적인 전장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질병과 부상들, 그리고 이를 치료하고 살려내기 위한 즉각적이고 강력한 새로운 약물들의 개발. 전쟁과 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류은주 / 삼양 바이오팜 USA 대표이사오늘의 노트 전쟁 전쟁 구호 전쟁 지역 전쟁 명분들

2022-03-09

[오늘의 노트]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얼마 전, 코로나에 걸려 한 달 가까이 코마 상태에 있다 깨어난 영국의 여자 환자가, 의료진으로부터 비아그라를 다량 투여하는 치료로 자신이 회복된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언뜻 맥락 없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미 2020년부터 미국, 영국, 중국 등은 비아그라와 같은 혈관 확장제가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심각한 폐호흡 곤란에 효과를 보일 가능성에 대해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있었다. 전 세계가 사상 유례없는 팬데믹 위기에 빠지자, 보건 당국과 제약회사에서는 즉각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하거나 증상 치료 가능성이 있을 유사 약물군들을 중심으로 ‘약물 재창출’을 검토하였다. 항바이러스제, 항체치료제, 심혈관계 약물 등이 거론되었는데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도 그중 하나였다.   이처럼 처음 개발 목적과 달리, 혹은 최초 허가된 적응증을 넘어 새로운 치료 효과를 입증하며 적응증을 확대하는 전략을 ‘약물 재창출’이라고 한다. 천문학적인 돈과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고도 정작 성공률은 10%도 되지 않는 험난한 신약 개발 과정을 생각할 때, ‘약물 재창출’은 시간과 돈과 노력과 실패의 위험을 많이 감소시키는 효율적인 신약 개발 전략 중 하나이다. 90세가 넘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살렸다는 한 면역항암제는 미국에서 2014년 처음 허가받은 이후부터 작년 말까지 16가지 암, 30여 개 적응증으로 확대되면서, ‘약물 재창출’ 전략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다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1997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비아그라는 2005년에 다시 ‘레바티오’라는 새로운 제품명 하에 폐동맥 고혈압 적응증을 추가하였다. 허가된 두 적응증 외에도, 비아그라의 고산병 치료 효과가 자주 언급되고 있으며, 작년에는 알츠하이머 예방 가능성도 보고되어 새삼 또 주목을 받았다. 미국 클리블랜드 병원 의학 연구소에서 미국인 700만 명의 6년간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실데나필을 복용한 환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률이 현저히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임상적 사례들이 충분한 동기가 되면, 새로운 질환에서의 작용 기전을 규명하고, 정식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엄격한 FDA 심사를 거쳐 적응증을 확장하는 ‘약물 재창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약물 재창출’ 코로나 치료제 1호는 미국에서 중증 코로나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였다. 첨단 인공지능(AI) 분석 기법을 통해 2020년 말에는 100여 개가 넘는 코로나 치료 ‘약물 재창출’ 후보 물질들이 도출되었다. 2021년 말 승인된 화이자의 먹는 코로나 치료제도 약물 재창출로 탄생한 것이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전파력은 강하나 중증 감염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오히려 독감과 같은 엔데믹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거기에 더해, 백신과 신약 치료제와 기존 약물 재창출에 힘을 쏟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합쳐, 팬데믹을 이겨내고 일상을 회복하는 2022년이 되길 소망해 본다. 류은주 / 삼양 바이오팜 USA 대표이사오늘의 노트 재창출 약물 약물 재창출 항바이러스제 항체치료제 발기부전 치료제

2022-02-08

[오늘의 노트] “모기에게 칼을 들다”

 지난 8월 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렵게 철수하자,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라는 코끼리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모기에 졌다’고 풍자했지만 그건 모기를 너무 얕잡아 본 표현이다. 의학 보고에 따르면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 1위는 모기로 등재되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와 일본 뇌염, 지카 바이러스, 뎅기열 등으로 한 해에만 전 세계 약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지난해, WHO는 전 세계 방역 역량이 코로나19에 집중된 사이, 말라리아 상황이 20년 전으로 돌아갈 위험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엑세스 바이오는 한때, 대표적인 말라리아 진단키트의 50% 이상을 전 세계에 공급했다. 필자가 근무했던 화이자도 2000년대부터 말라리아 취약 지역인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환자 치료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을 포함한 세계의 주요 기관과 정부들이 말라리아의 근절을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먼 것 같다. 아직도 2분마다 5세 이하 어린이 1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화이자와 함께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출시에 성공한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지난 7월, mRNA 기술 기반 말라리아 백신 개발을 선언하기도 했다.   ‘모기 보고 칼 뺀다’는 우리네 속담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우거나 작은 일에 화를 내는 속 좁은 사람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은 진단키트와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넘어 정말 ‘모기 보고 칼을 빼야’하는 상황이 되는 듯하다. 북극의 순록이 모기에 물려 떼죽음을 당하거나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모기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등 이제 어느 나라도 모기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게이츠 재단의 후원으로 바이오 공학 회사가 10억 마리의 유전자 조작 수컷 모기를 올 봄, 플로리다의 한 지역에 살포하였다. 궁극적으로 말라리아, 뎅기 등을 일으키는 모기의 개체 수를 줄이는 파일럿 시험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10월엔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연구진이 “말라리아를 퍼뜨릴 모기만 유인해 죽일 수 있는 가짜 피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모기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촘촘히 짜인 특수 옷의 상용화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달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약 2주간 열렸다. 100여 개 국가가 지구 기온 1.5℃ 상승을 막기 위해 2030년까지 산림파괴를 종료하고 메탄가스를 30%까지 감축하기로 공동 협약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블랙핑크도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달라’는 특별 영상 메시지를 COP26에 보냈다. 더는 이런 지구온난화 방지 협약들이 공허한 말 잔치로 끝나면 안 된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1도 뜨거워질 때마다 모기는 약 30% 이상씩 늘어나서 모기 매개 감염병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계속 배출하면 2070년에는 세계 인구의 90%인 약 85억 명이 말라리아 등 모기 매개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보고서가 저명한 의학전문지 란셋 7월호에 발표되기도 하였다.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는데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한여름이 지나고도 독한 가을 모기들에 시달렸었다. 11월부터는 실내 난방 덕에 곳곳에서 또 여전히 출몰한다. 모기에게 칼을 들 때다. 류은주 / 전 화이자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오늘의 노트 모기 모기 토네이도 말라리아 진단키트 말라리아 퇴치

2021-11-25

[오늘의 노트] 의약품에도 코셔와 할랄 인증

지난 10월, 세계 최대 무슬림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식품에 이어 의약품에까지 ‘할랄’ 인증을 의무화했다. 5년의 시행 기간을 둔다고 하지만, 할랄 인증을 받으려면 알코올을 함유하거나, 동물 실험을 하거나, 돼지고기 등 동물성 성분을 함유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동물실험을 거쳐 탄생하는 많은 신약의 경우 실제로 이 할랄 인증 의무화가 인도네시아 의약품 허가와 수급에 어떻게 적용될 런지 궁금하다.     ‘할랄’은 최종 제품은 물론 원재료와 제조 공정까지 이슬람 율법에 따른 제품을 의미하는데, 유대교 율법에 부합한다는 뜻의 ‘코셔’와 마찬가지로 돼지 도축을 금하고 있다.     식품과 화장품에서는 이미 코셔와 할랄 인증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의 제품들도 몇 년 전부터 특정 지역의 수출품을 중심으로 이런 인증들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식품과 화장품처럼 기호품이 아닌 의약품에도 할랄과 코셔 인증은 있었다.     우선, 처방전 없이 환자가 직접 약국에서 살 수 있는 OTC(over the counter) 의약품은 아무래도 환자들이 직접 약을 결정하기 때문에, 비타민이나 기침 감기약, 통증, 알러지 약 등의 경우 마케팅 관점에서 종종 코셔나 할랄 인증 기관에서 해당 인증을 받고 출시되기도 한다.     치료약을 환자 자신이 아닌 의사의 처방에 의해 결정하는 전문의약품(ethical medicine)은 상대적으로 이런 인증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우연히도 필자는 화이자를 다닐 때 글로벌 마케터로서 전문의약품을 런칭하면서 전략적인 차원에서 코셔 인증을 받거나 할랄을 존중하여 출시했던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예는 글로벌 희귀질환 치료제로서 전문의약품 주사제 세계 최초로 코셔인증을 받았었다. 대상 질환이 유대인에게 주로 발생하는 유전적 질환이었고, 해당 치료제가 동물성 성분을 함유하는 기존 제재와 달리 식물성 원료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유대인들에 친화적임을 호소하려는 제품 차별화 마케팅 전략이었다. 코셔 인증 자체가 의사들의 처방과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처방을 받는 유대인 환자들의 제품 호감도를 높여 복약순응도(compliance rate)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예는, 연질 캡슐 제형의 급성 통증 치료제였다. 그 당시 무슬림 국가들이 제품 런칭에 매우 소극적이어서 그 이유를 파악해보니, 연질캡슐의 원재료인 젤라틴을 돼지 피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해당 제품의 판매가 컸던 미국과 유럽 국가들 및 본사 생산팀과 협의를 거쳐, 연질 캡슐 재료를 돼지고기에서 소고기 추출로 전면 변경하였다. 해당 약의 시장 크기로 따지자면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이슬람 국가들이었지만 급성 통증 환자들 개개인에게 더 나은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 싶은 인도적 차원에서 내린 글로벌 생산 전략 변경이었다. 이슬람 국가들이 런칭을 시작하면서 필자에게 보내온 따뜻한 감사 인사를 기억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에서 FDA 허가 이후에 인증 기관을 통해 코셔와 할랄 인증을 받는 의약품들이 있지만, 동시에 이들 인증이 더 나은 의약품을 뜻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과 효과는 의약품 개발 및 FDA 승인 과정을 통해 이미 충분하고 완전하게 검증된 것임을 잊지 말고 환자 개개인에게 최적의 약물을 선택해야 한다. 류은주 / 엑세스 바이오 CBDO오늘의 노트 의약품 인증 전문의약품 주사제 인도네시아 의약품 인증 의무화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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